본문 바로가기
  • 배워서 남주자. 여동엽 블로그
  • 배워서 남주자. 여동엽 블로그
  • 배워서 남주자. 여동엽 블로그
기타(생각, 잡담)

잘할 이유를 지워가는 회사 #2

by dongyeop 2026. 5. 14.

일을 열심히 하게 만드는 힘은 어디서 올까.

사명감? 연봉? 동료? 다 맞는 말이지만, 가장 조용하고 가장 강력하게 작동하는 건 "이 조직에서 잘하면 뭔가 달라진다"는 믿음이라 생각한다.

그 믿음이 사라지는 순간, 사람은 더 이상 전력을 쏟지 않는다. 무너지는 게 아니라, 그냥 조용히 최적화된다. 이 조직에서 최선을 다해봤자 의미 없다는 걸 몸으로 학습한 결과다.


성과를 내도 달라지지 않는 조직


성과를 낸다. 처음엔 뿌듯하다.

그런데 돌아오는 게 인정이 아니라 일이다. 잘하니까 더 맡긴다. 잘 처리했으니 이것도 해봐라. 지난번처럼 해봐. 그러면서 잔소리는 빠지지 않는다. 이 부분은 왜 이렇게 했냐, 저건 좀 더 이렇게 했으면 어땠겠냐.

칭찬은 없고, 할 일만 쌓인다.

사람은 바보가 아니다. 몇 번 겪고 나면 학습한다. '열심히 하면 일이 늘고, 잘하면 잔소리를 들으니, 그냥 적당히 하는 게 낫겠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건 태만이 아니다. 합리적인 반응이다.

성과를 냈을 때 손해를 보는 구조라면, 사람은 그 구조에 맞게 행동을 조정한다. 조직이 원하는 게 뭔지 빠르게 파악하고, 거기에 맞춰 최소한의 에너지를 쓴다. 더 내지 않는다. 이유가 없으니까.

문제는 이게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성과에 인색하고 잔소리에 관대한 조직은, 결국 딱 그만큼의 사람들로 채워진다.



올라가고
싶지 않은 조직


두 번째 문제는 조금 다르다.

조직에서 오래 버티게 만드는 또 다른 힘은 "저 자리, 나도 갈 수 있겠다"는 욕심이다. 내 위의 사람이 자기 자리를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여야, 나도 저기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상사가 성장하고 싶어야 한다. 승진에 욕심이 있어야 한다. 지금 자리에서 뭔가 하고 있다는 느낌을 줘야 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행복해 보여야 한다.

그런데 내 상사가 위아래로 치이는 게 너무 선명하게 보인다면?

위에서는 압박을 받고, 아래에서는 치이고, 매일 지쳐 보이고, 표정은 늘 무겁다면. 그 자리를 10년 버텨서 올라갔더니 저렇게 된다면.

그 자리에 앉고 싶은 이유가 사라진다.

승진이 보상처럼 느껴지려면, 승진 이후의 삶이 지금보다 나아 보여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많은 조직에서, 한 단계 올라간 사람의 삶은 딱히 더 좋아 보이지 않는다. 책임은 늘고, 권한은 모호하고, 위에서 내려오는 압박은 더 강해진다.

이걸 보면서 자라난 사람이 "나는 꼭 저기 올라가야지"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조직이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방식

성과를 내도 인정받지 못하는 조직은, 사람이 적당히 하도록 훈련시킨다.
상사가 행복해 보이지 않는 조직은, 사람이 올라가길 포기하도록 만든다.

이 두 가지가 겹치면, 사람은 이 조직에서 잘할 이유를 완전히 잃는다. 적당히 버티면서, 더 나은 기회를 기다린다. 그게 합리적인 선택이 되어버린다.

무서운 건, 이 과정이 아주 조용하게 진행된다는 거다. 누가 대놓고 "이 회사에서 열심히 하지 마세요"라고 하지 않는다. 그냥 구조가 그렇게 작동할 뿐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구조에 조용히 적응한다.

조직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방식은, 대부분 이렇게 소리 없이 이루어진다.



허츠버그는 직장에서 사람을 움직이는 요인을 두 가지로 나눴다.

위생요인과 동기요인

위생요인은 급여, 근무환경, 안정성 같이 불만을 없애주는 것들이고,
동기요인은 성취감, 인정, 성장 가능성 같이 실제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들이다.

핵심은 위생요인은 충족돼도 동기요인은 생기지 않는다. 불만만 없어질 뿐이다. 인정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연봉을 올려줘도, 사람은 더 잘하게 되지 않는다. 그냥 덜 떠날 뿐이다.

갤럭의 직원 몰입도 연구에서도 반복적으로 나오는 결과가 있다. 사람은 자신의 성장이 보이는 조직에서 몰입한다. 그리고 그 성장이 보이려면, 올라간 사람의 삶이 나아 보여야 한다. 롤모델이 작동해야 한다는 뜻이다. 상사가 지쳐 있으면, 조직의 미래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결국 사람 관리는 사람을 관리하는 게 아니다. 사람이 잘하고 싶어지는 환경을 설계하는 것이다. 그 환경이 갖춰지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사람을 데려와도 그 구조에 맞게 행동이 수렴한다. 반대로 그 환경이 제대로 작동하면, 굳이 독려하지 않아도 사람은 움직인다.

관리의 본질은 통제가 아니라 설계가 아닐까.


댓글